역사의 기억술과 기호화의 형태로 바라본 태권도

Alexander Ugay

정의는 사람들이 연합하게 되는 주된 이유 중 하나이다. 성공과 행동, 처벌과 범죄의 사이에는 정의가 있다. 또한 정의는 무작위적이고 일관성 없이 발생하는 사건 사이의 관계를 잇는 감각과 논리를 제공한다.

지배 그룹의 압력이 가해질 때 민족 공동체는 ‘우리’와 ‘그들’ 사이의 경계를 형성한다. 민족 집단은 물리적 파괴가 아닌 집단적, 문화적 망각으로 인해 소멸하므로 사람들은 문화의 변화에 맞서 가정의 전통과 문화를 강화한다(1). 과거에 대한 기억은 역사의 기호화와 각종 기억술을 통해 보존된다(2).

유태인들은 인류 역사상 최초로 민족 정체성을 신과 결부시켰고, 문화적 기억의 형태로 종교를 발전시켰다. 이 때문에 이스라엘의 문화적 기억은 실재하는 국가, 영토, 교회 등 민족 정체성 형성에 필요한 요소들이 없어도 수백 년 간 저장될 수 있었다. 구약을 연구하는 학자들은 신명기가 내면화되고 비물질화된 새로운 형태의 정체성을 전달하는 집단, ‘운동’ 또는 ‘학파’를 보여준다는데 의견을 같이한다 (Weinfeld, 1972). 이러한 정체성을 뒷받침하는 유대 경전 토라는 다른 집단이라면 영토, 제도, 정부, 기념비 등의 형태로 만들어 제시해야 하는 것들을 모두 담고 있기에 하인리히 하이네(Heinrich Heine)의 말처럼 ‘이동 가능한 고향’이다(3).

이집트에서 벗어날 필요가 없었다면 유태인들은 아마도 이토록 강하게 전통을 지키지 않았을지 모른다. 한국은 늘 일본, 중국, 미국, 소련과 같은 이웃 강대국의 영향 아래 놓여 있었다. 이러한 면에서 한국 역사는 이스라엘 역사와 어느 정도 유사함을 보인다. 태권도는 일본 식민주의에 저항하는 과정에서 생겨났다. 태권도를 창시한 최홍희 장군은 무술의 기억술을 역사적 기억과 결합하여 새로운 투쟁 형태뿐 아니라 독특한 문화적 기억 대상을 만들었다. 아래 장군의 이야기는 이를 명확히 보여준다:

“그때 정신과 기술 모든 면에서 일본의 가라테를 능가하는 우리 민족 고유의 무술을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다. 전국에서 사람들이 이 기술을 연마하게 되면 일본 감방에서 함께 지낸 동포 셋과 한 약속을 지킬 수 있으리라고 굳게 믿었다. 틀의 이름은 5천년 한국 역사에서 가장 뛰어난 위인들을 기려 붙였다(4). 태권도는 자기를 방어하고 정의를 위해 싸울 때에만 사용하는 군사 기술로, 틀을 정확히 이해해야 이러한 태권도의 특징을 이해할 수 있다.


예시:

틀 6: 중근
한일 병합을 이끈 초대 조선총독 이토 히로부미를 암살한 안중근 의사 이름을 따서 지었다. 1910년 여순 감옥에서 사형될 당시 안중근 의사의 나이인 32세를 따라 32개의 동작으로 구성된다.

틀 19: 연개
고구려의 명장수 연개소문의 이름을 따서 지었다. 연개소문 장군은 안시성 전투에서 당나라군사 30만명을 멸해 당나라 군을 한반도에서 쫓아냈다. 이 틀은 안시성 전투가 벌어진 서기 649년의 마지막 두 숫자를 따라 49개의 동작으로 구성된다.

틀 24: 통일
1945년 이후 분단된 한국의 통일을 결의하며 이름 붙였다. 연무선 I은 단일 민족을 의미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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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Jan Assmann, "Cultural Memory: Writing, Memory of the Past, and Political Identity in the High Cultures of Antiquity" (Moscow: Languages of Slavic Culture, 2004) p.368.
(2) 기억술은 정보의 저장을 돕고 연상을 통해 기억의 양을 증대시키는 일련의 기술과 방법론들을 일컫는다. 추상적인 사물과 사실들을 시∙청각 또는 운동감각적으로 재현 가능한 개념들로 대체하고, 이미 다른 종류의 기억들로 존재하는 정보와 장소를 결합해 정보를 쉽게 저장할 수 있도록 한다.
(3) Ibid.
(4) 틀은 논리적 순서에 따라 전개되는 기본적인 공격 및 방어 동작들로 이루어져있다. 태권도에는 총 24개의 틀이 있으며, 틀의 개수 24는 하루의 24시간을 의미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