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만신 지도와 만신 이야기

소소한 미래를 점치는 사람들, 그리고 이런 신의 예언에 의지하는 일반 주민들은 오동에서 쉽게 찾을 수 있는 지역적 특성이다. 그러나 이런 만신 보살, 법사들은 흔 히 무당, 점쟁이라고 불리며 이들이 신당, 법당이라고 부르는 점집은 교회, 절과는 다르게 지도에 표기되지 않는다. 이 동네에서 만신은 음지에 머물러 있는 비공개적 인 은밀한 믿음이자 가장 오래된 토속 신앙이다.

처음 이 프로젝트를 시작한 당시, 안양시 전역에서 이루어지고 있는 재개발과 그전 단계에 있는, 아직 ‘동네’라는 말이 어울리는 5동의 과거, 현재, 미래를 조금 다른 시선으로 기록하고자 했다. 과거부터 현재까지의 변화보다 현재의 모습에서 미래 를 예측해 볼 수 없을까 라는 생각으로 미래를 점치는 것을 업으로 하는 이 지역의 무속인들에게 조언을 구하고 이들을 통해 5동의 내일을 그려보려는 시도였다. 동 시에, 만신 집들이 5동에 유난히 응집된 이유를 조사하고, 이 동네의 주민으로 사는 이들의 이야기를 듣고자 했다.

이 프로젝트를 시작하고 5동 내의 무속인들을 찾아다니며 직접 만나본 보살, 법사 들은 5동이라는 지역과의 소통에는 관심이 없는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큰 신을 모 시고 굿판을 벌리는 큰 무당이 아닌 동네의 작은 점집들은 찾아오는 동네 사람들과 차 한잔 나누며 그들 삶의 고민을 듣고 만신의 얘기를 전달하는 조언자와 이를 통해 소소한 수입을 벌어들이는 상인의 역할, 그 중간 입장에 있다.

이들에게 말하고 묻는다. “5동 동네의 만신 지도를 만들고 있습니다. 지도에 표기 해서 전시할 예정입니다. 5동에는 언제 어떻게 자리 잡으셨어요? 이곳 5동의 땅 기 운은 어떠한가요? 앞으로 어떤 변화가 있을까요? 이곳에 5동 주민들은 어떤 상담을 받으러 찾아오나요?”
사람들과의 소통이 직업의 일부인 이들은 그러나 일반적인 사회의 시선과 평가가 타 종교보다 폄하되고 있어서인지 매체의 노출을 극도로 꺼리기에 인터뷰와 사진촬 영에는 많은 어려움이 따른다. 한국의 가장 오래된 믿음 형태인 토템이나 샤먼이 이제는 간판 하나로 때로는 표식으로만 소통하는 소수자의 위치로 추락한 셈이다.


2. 눈에 띄는 사거리와 숨겨진 좁은 골목

안양 5동에서 발견한 장점 중 하나는, 거의 모든 골목이 막힘 없이 이어져 길을 잃 어도 모퉁이에 이르면 어느덧 아는 길을 찾아 나올 수 있다는 점이다. 지도를 펴고 5동의 경계를 짚어가며 이 골목에서 저 골목으로 몇십 번을 계속 걷는다.
그 수많은 발걸음 사이로 무수하고 가녀린 사념들이 호흡하듯 느리게 때론 빠르게 교차한다. 공공미술이라는 허울을 뒤집어쓰고 한 동네의 고요한 일상을 침범하고 있다는 불청객의 고뇌가 이 골목 한 자락. 멀리서도 보이는 흰 기와 붉은 깃발, 만(卍)자 도상, “00 도사” “00 보살” “00 선녀” “00 장군” 등 눈에 띄는 간판과 이 와 별개로 소통 밖의 영역에 숨은 듯한 그들에 대한 연민이 다음 골목 끝까지. 녹록 지 않은 그들의 삶에 문을 두드리고 들어가는 행위에 대한 숙연함이 그 옆 골목으로 이어지곤 한다.

먼저 잘 보이는 곳에 크게 간판이 붙어있는 사거리 불사, 보살 집들을 표기한다. 용기 있게 문을 열고 들어서면 눈에 보이는 형형색색의 화려한 법당(신당). 가꾸고 보살피고 봉양하고 대접하고.
손님을 기다리고 맞아들여 신께 여쭈어 점을 보고.
신을 모시는 그들의 일상이다.
거기에 일반인으로 사는 삶이 덧붙여지고 덧입혀진다.

처음 안양 5동을 거닐며 이 모험을 구상한 계기는 골목골목 휘날리는 깃발이었다. 누가 찾아올까 하는 궁금증과 주택가 깊숙이 자리 잡은 생각보다 많은 수의 점집. 어느덧 골목 구석구석 숨은 이들 만신 집을 찾아내기 위해 동네 곳곳에 내 발자국을 찍는 것이 안양 5동에서 행하는 지속적인 의식(儀式)이 되었다.
그리고 의식(意識)하는 행위.
날씨에 민감해지고, 날짜를 의식하기 시작했다.

오늘이 달이 차오른 보름날인가. 해가 길어진 여름날엔, 음습한 날을 피해 길을 나선다. 어느 날 깃발을 따라 옥상 옥탑방까지 올라가니 문은 잠겨 있고, 아랫집 이웃이 얼굴 내밀며 칠석날 기도 가서 내일 아침 온다 알려준다.
내일 아침 다시 와보긴 하겠으나 만나줄지 그 어떤 것도 장담하긴 어렵다. 대부분 첫걸음에 순조로운 만남이 성사되지 않으면 그 다음번에는 더욱 수월치 않기 때문 이다. 한 집에서 반겨주면 그 날은 그다음 찾은 집도 반겨주는 듯하니 이런 소소한 운수 점치기가 스스로 만든 징크스인지 아니면 우연인지. 이러한 반복의 흐름이 이 작업을 하는 시간 대부분을 채워가는 동안 이성적인 접근과 사고는 이미 쳇바퀴 돌듯 수십 번쯤 옮겨 놓은 걸음에 수리산 관모봉 정상에서 흔들리는 태극기처럼 부질없는 것이 되었다.

숨을 가다듬고 두어 뼘 열린 문을 밀며 조심스레 들어간다. 반가운 첫 맞이 후, 알 수 없는 프로젝트 운운하며 하릴없이 찾은 듯한 객인 걸 알게 되면 거부와 거절 의 몸짓이나 대답이 일관되는데, 어찌해도 이해할 수밖에 없는 것이 드러냄을 꺼리 는 그들의 사회적 위치와 생활이다. 한껏 긴장한 불청객은 그러다 가끔 들어와서 커피 한잔 하라는 반가운 소리를 듣는 다. 그저 지나가는 뜨내기도 그리운 새로이 자리 잡은 점집인 경우이다. 차를 마시 며 사는 얘기 그럭저럭 나누다 보면 계획했던 인터뷰 의뢰가 때론 참 구차하다. 재개발 문제는 정부와 정책의 사안이고 몸주 신과 조상신들 봉양하며 하루하루 사는 이들이 안양 5동의 미래에 뭐 그리 관심을 기울였을까. 매일 올리는 기도는 이들의 주 고객인 안양 주민들과 보이지 않는 주민인 만신들을 위한 것이라 한다. 개개인의 안녕과 마을 신령들을 위한 이런 매일의 기도가 5동과 주민들의 오늘과 내일을 위해 더 의미 있는 일인지 모른다.

해가 뉘엿해질 즈음, 인터뷰와 촬영 여부를 문의하면 그들은 먼저 신에게 허락받는다. “인터뷰하자는데 할까? 하지 말까?” 허공에 대고 질문하고 소리 없이 답을 얻는다. 촬영이 시작되면 법당 안 불을 더욱 밝혀주며 가지런히 진열된 신령들의 상징물을 바라보며 속삭인다. “오늘 매스컴 타고 싶어서 아침부터 그렇게 반짝거리면서 들떠있었구나.” 5동의 미래를 묻던 나는 어느새 그들의 지나온 과거와 현재의 삶으 로 질문을 옮겨간다. 언제 어떤 연유로 이곳에 자리 잡았고 지금 여기 5동에서 어떻 게 살고 있는지.

주인공은 이미 그들이고, 그렇다면 나는 이후 이들이 사는 이 동네에 대한 어떤 기록을 남기고자 하는가. 인터뷰를 마치고, 우선 감사의 인사를 전한다. 이제 복채 를 들고 다시 한 번 찾아가 앞으로 남겨질 이 작업의 자취를 점쳐볼까 한다.

* 만신 지도는 3개의 버전으로 제작했다. 안양 5동 스튜디오 전시장 2층 창문과 지하에 인터뷰 영상과 함께 설치했고, 종이로 만든 가이드맵은 이후 전시도록과 함 께 5동에 배포했다.

** 지도 표기를 마친 시점에 발견한 이 동네 만신 집은 총 마흔아홉 곳이었다. 일이 주 사이에 사라지기도 하고 새로 생기기도 했는데, 오십이 되었다 싶으면 한 곳이 문을 닫아 오십을 채우지 못했다.

   - 2010. 9.


2015년 안양 5동:
안양 5동은 2010년 낮은 사업성을 이유로 재개발사업이 중단된 이후, 아직 재개발 이 이루어지지 않았다.
2015년, 안양시는 재개발사업이 다시 추진되어 2018년에 착공한다고 발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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